나의 실존은 그림을 통해 완성된다.

그 완성은 그러나 추이(推移)된 과거다. 완성된 과거는 현재를 근거로 앞날을 향해 움직인다.

삶은 결핍과 유동의 불가해한 과정이다.

삶은 요동친다.

삶은 찰나, 찰나마다 눔부시게 반전한다.

나는 견자(見者)다.

나는 삶의 비밀을 그림을 통해 힘겹게 드러낸다.

그 과정은 나를 비우는 정화의 과정이다.

 

사물은 스스로 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러나 사물의 아름다움은 수시로 추이되는 것이어서 그것의 잠여은 허망하고 덧없다. 나는 사물의 율동이 전하는 전언(傳言)을 그린다. 자유로운 연상, 유연한 내재율의 율동, 살아있는 것들의 선세한 삶의 징후들은 나의 그림과 극적으로 만난다.

삶은 유동적이며 또한 즉흥적이다. 그러나 그 불연속적인 삶도 생명 스스로의 엄정한 질서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 즉 정체성(正체性)의 다른 이름이리라.

 

나는 요동치는 삶의 낌새들을 화폭에 옮긴다.

삶의 징후들은 끊임없이 명멸하는 것이어서, 그것들의 율동이 내 삶의 박동과 포개어질 때 그때 나의 그림은 완성된다.

생명의 율동은 탄생에서 소멸을 향해 움직인다. 그 동선(動線)은 반영이자 지움이고 표현이자 망아(忘我)이다. 삶의 내밀한 비밀이 역설하듯이 내 그림의 비밀 또한 역설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그 역설이 상식이 되어야만 하는 불가해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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