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새 소리를 들으며 꿈을 펼치고 성장한 고향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좋은 기억들이 나를 에워싸 기분이 좋고 마음이 푸근하며 엔돌핀이 분비되어 마냥 즐겁다.

 

 유년기 시절 흙 속에서 뛰어 놀며 자란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언제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차 있으며 또한 살아있는 자신의 또 다른 거울이다.

내가 자란 고향 마을은 산들이 아늑하게 둘러싸여 있고 동네 앞에는 맑은 냇물이 항상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의 구름과 굽이쳐 가던 산줄기의 아름다운 곡선은 너무나 예술적이었다.

 이러한 곳에서 무엇보다도 척박한 땅에 발목을 묻고 살아가던 부모님들의 고단한 삶의 밑에서 생활 하였기에 더 더욱 고향이 그리워지게 하는 지도 모른다.

 

 그리움이 가득한 초등학교 시절에 `철수와 영이 그리고 바둑이' 이야기가 담긴 몇 권의 책과 몽당 연필 한 두 자루를 넣은 필통과 도시락을 둘둘 말아 싼 책보자기, 보자기를 어깨에 동여 메고 뛰어서 학교에 가던 날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으려고 보자기를 펼치면 도시락 반찬인 고추장이 흘러나와 책과 범벅이 되어 당황스러워도 웃음으로 보낸 시간들….

그리고 학교공부를 마치고 난 뒤 하교 길에는 일찍 오시라던 부모님의 당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자치기를 하면서 해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서쪽 하늘에 붉게 타오르던 저녁놀. 그 타오르던 불길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까닭 모를 불안감과 서러움, 안타까움, 배고픔이 닥쳐서 그제서야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께 꾸중을 듣고 혼난 적도 있었다.

 

 여름이면 들판을 쏘다니며 소풀을 하고 또한 소에게 풀을 가득 뜯어 먹여서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던 나날들….

그런 저녁에도 어쩌다 오줌이 마려워 한밤중에 잠이 깨어 마당에 나와 서면 아! 깜깜한 하늘에 쏟아질 듯 빛나는 별들이 그 또 다른 세상의 경이롭고, 신기하고, 장엄한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데도 나는 잠만 자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괴감에 빠져 들기도 했었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광복과 6·25사변을 거치며 가난을 면치 못했다.

목화를 따다가 할머니들이 밤 새워 물레를 돌려서 솜을 만들어 그 실을 베틀에 걸어 짠 무명천, 그 무명천으로 만든 바지저고리를 어른들께서 입었다. 또한 사랑어른들께서는 밤이면 새끼를 꼬고 멍석을 만들었다.

그때는 냉장고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었다. 그러나 일 년 내내 마르지 않은 시원한 우물이 있었다. 두레박을 넣어 힘겹게 끌어 올려 물통에 가득 담고 아무리 길어도 마르지 않으며 먹어도, 먹어도 세금이 안 나오는 우물가에는 인정과 대화 속에 사랑이 넘쳤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지나 변화와 변모를 가져왔지만 그래도 고향의 이미지는 아름답고 풍요롭다.

현재에도 고향의 주변에는 언제나 고마운 사람들이 있고 나를 이 세상에 불러내어 주신 부모님, 한평생 고향 마을의 논밭을 일구신 곳이다. 따라서 다시 태어나도 그 고향집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살고픈 곳, 그때 그 모습으로 유년기 시절을 보내고 싶다.

 

언제나 따뜻한 우리들의 보금자리인 고향이 그리워진다. 지워지지 않는, 지울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좋은 추억의 풍경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