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광덕, 색들의 불꽃잔치

미술평론가 / 서성록

 

“삶에는 먹고 자라는 일 이상의 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트리나 폴러스(Trina Paulus)의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알에서 갓 태어난 애벌레가 품은 의문이다.

그 애벌레는 늙은 애벌레에게서 아름다운 날개로 날며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사랑의 씨앗을 날라주는 나비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고치가 되는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애벌레는 마침내 날갯짓을 하며 하늘과 땅을 있는 나비가 된다.

 화가에게 그림 그리는 일은 나비가 되는 것과 같다.

화가는 나비처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실어 나르기 때문이다.

 그런 희망이 없다면 화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먹고 자라는 일 이상의 그 무언가’가 화가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런 점에서 화가는 ‘꿈을 먹고’ ‘꿈을 꾸며’ ‘꿈으로 비상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나비가 되는 과정에서 시련과 갈등, 꿈과 환멸, 자기투쟁을 무시무시하게 겪어야 하지만 말이다.

  장광덕씨는 활기찬 세계를 화면에 담는다. 무지개가 뜨고 식물이 발육하며 바람이 노래하는 자연 같기도 하고 새들이 지저귀는 숲의 합창을 담는 것 같기도 하다. 모든 색들을 동원해서 작가는 화면을 약동의 공간으로 휘감아 올린다.

호흡이 큰 붓질로 대범하게 화면을 긋고 숨 가쁘게 덧칠하며 물감의 질료를 투박하게 생성시킨다.

 

 그의 작품은 물감과 붓질을 남긴 것이 아니라 몸짓을 남긴 것 같다. 캔버스에 채색된 색깔과 일정한 방향 없이 흩어진 드로잉들은 공간을 조형적으로 장식하기보다는 작가의 체취를 더 강하게 반영한다. 색깔도 마찬가지다.

빨강 옆에 이웃해 있는 파랑, 그리고 빨강과 대치된 연두, 순도 높은 색끼리의 대비는 어울리기보다 서로 마찰하는 느낌을 안겨준다.

 “나의 요동치는 삶의 낌새들을 화폭에 옮긴다. 삶의 징후들은 끊임없이 명멸하는 것이어서 그것들의 율동이 내 삶의 박동과 포개어질 때 그때 나의 그림은 완성된다.”(작가노트 중에서)

작가는 삶의 실재를 포착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그리고 삶의 자취들을 조형언어로 치환하여 형용하고 있는 셈이다.

색깔의 대비와 기탄없이 펼쳐지는 드로잉은 삶을 표상하는 언어로서 채택되고 있다.

 

 그는 애써 의도하지 않고 조형인자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을 이루게 하는 ‘무위이화(無爲而化)’를 구사한다.

뜻을 강제하지 않으면서 뜻을 이뤄가는 독특한 자세를 견지한다. 가만히 보면 그의 작업은 일정한 형태가 없다.

그 흔한 구도란 것도 없다. 주된 흐름도 빠져 있다. 작은 조형언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산재해있는 형국이다.

이것은 그가 작품을 전체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기보다는 화면에 맡겨두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표시다.

그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도 그런 점이 나타난다. 그린 다음 지우고 다시 물감을 올리기를 반복한다.

그런 가운데 모종의 형상이 나타나고 암시된다. 그 결과 작가조차도 예상하지 않은 형상을 마주하게 된다.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을 일부 전위 미술가들처럼 ‘맹목적인 자유’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창작하는 자체를 예술의 목적으로 삼았던 사람들과 장광덕씨가 다른 점은 역동적인 현재적 삶의 징후들을 포착하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인생을 허무와 우연으로 치부하는 사람들과 약동과 긍정으로 파악하는 장광덕씨는 현저히 구별된다.

 

 그의 작품은 색깔들로 아롱진다. 살아있는 존재에서 나오는 발랄함과 싱그러움이 묻어나온다.

드로잉의 율동은 경쾌한 리듬에 맞추어 춤추는 사람들처럼 흥겹다. 그의 작품에 흐르는 정서는 어둡고 침침한 것이 아니라 밝고 화사하다. 생동감과 활기찬 움직임이 봇물처럼 넘쳐난다.

 나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엉뚱하게 페스티벌 같은 것을 연상했다. 여러 개의 소리가 왁자지껄 쏟아져 나오는가 하면 술렁임과 번쩍임, 그리고 볼거리로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많은 인파에 부대끼고 밀려도 개의치 않는 것은 더 큰 즐거움을 선사받기 때문이다.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 화려한 불꽃잔치를 구경하기도 하고 환호를 지르기도 하며 이곳저곳을 헤치고 다니며 신기하고 흥미로운 것에 눈길을 빼앗기기도 한다.

페스티벌에 갈 때 설렘이 있듯이, 그의 작품을 보면 예기치 않은 만남, 즉 살아있는 것에 대한 반가움을 만난다.

모쪼록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나비처럼 장광덕씨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맥박치는 삶의 희열을 퍼날라주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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